자율

 나름의 뜻을 품고 전망좋은 직장을 박차고 고국으로 떠났으나, 내 능력을 과대평가한 것인지, 다른 원인이 있는지, 여러 사정상 정해진 역할 안에서 나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일찌기 깨닫고 서로간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신속히 결정을 내리고 얼마전에 지내던 곳으로 돌아왔다.

이전 회사로 돌아가는 것을 가장 먼저 떠올리고 원래 속했던 팀으로 재입사 절차를 밟기로 했다. 돌아간 사무실은 물리적인 위치를 옮겨서인 탓도 있고, 팀원 물갈이, 기업공개 등으로 더 이상 그리워 했던 곳이 아님을 깨닫고 일단 보류하고 잠깐 쉬면서 남가주를 여행하기로 했다.

달콤한 휴식도 잠시.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조금은 막막해졌다.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선택의 여유가 생겨서이다.

예전부터 동경하던 알만한 다국적기업에 면접을 보고 좋은 결과를 얻었는데, 리더십항목에서 큰 점수를 얻어서 매니저 역할로 다시 진행해보는 것은 어떠냐는 피드백도 함께 받았다. 너무 쉽게 풀려서일까? 막상 일을 시작하려니 망설여졌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맞는지. 고성과를 기대하는 큰회사라는 중압감은 견딜 수 있을지. 중요 의사결정과정에 내 의지는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 잠깐의 고민뒤 면접 본 포지션은 보류하기로...

매니저가 되어야 하나? 전부터 나이나 경력을 고려했을때 매니저가 되면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들어왔다. 내가 역량이 모자란 것도 하나의 구실이지만, 동료들이 일을 잘할 수 있게 하는 것보단 내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실무에 가까운쪽에 남고 싶다.

“내가 원하는 일은 무엇일까” 안정? 균형? 도전? 끊임 없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봤지만, 나도 나를 모르겠더라. 일찌감치 사업 할 그릇은 되지 않는 다고 판단해서, 끌리는 많은 곳에 입사지원을 하고 면접을 보며 알아가기로 했다.

클라우드, 사회관계망 회사, 음식 기술 회사들, B2B 분석, HR 기술, 각종 O2O 회사 등등 여러분야에 대면 면접을 보았고 몇몇으로부터는 제안 패키지를 받았는데, 비교적 좋은 조건에도 내가 최근 몇년간 일해온 “교통” 분야 이외에는 관심이 적음을 깨닫게 되었다. 바보같이...

다른 승차공유 회사에서 뒷단 개발자로서 기존에 내가 해왔던 일과 비슷한 일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잘 되었고 좋은 대우로 제안을 받았다. 함께 일하게 될 팀원들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내 소속이 바뀌는 것 외엔 그게 그것 같다. 나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이쯤되면 나에게 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교통이라는 분야에 혁신을 가져오는 것에 보탬이 되는데 큰 보람을 느껴왔는데 무엇을 더 해야 할 지 갈팡질팡. 이 분야의 미래인 자율주행은 어떨까? 매우 관심있고 흥미를 가지고 있지만 핵심기술인 AI, 기계학습 등엔 문외한이기 때문에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의문을 가지고 있던 차에 나에게 연락해 온 자율주행 회사가 있어서 면접을 진행했고, 내가 파고들 여지가 있다는 걸 알게되어서, 동시에 이 분야에서 유망하다는 여러 회사들에 지원을 했다.

이미 크게 성장한 회사. 큰 투자와 함께 대형제조업체를 고객으로 확보하여 이제 막 시작한 회사 등 다양한 회사들을 만나고, 종국에는 몇가지의 선택지를 가지게 되었다.

아주 작지는 않지만 내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적당한 규모, 여느 회사와 다른 제품 접근 철학, 배울점이 많은 훌륭한 동료들이 있는 자율주행 회사의 시뮬레이션 팀에서 실무직으로 곧 출근하게 된다. 최고액 연봉, 명성, 안정성 등은 뒤로하고, 잘해내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지만, 고민 끝에 스스로의 의지로 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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