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놀이

“이제부터 내가 엄마고, 아빠가 아기 어때?”

 

하루에도 몇번씩, 한 열번 정도? 내 딸 일린이가 나에게 하는 제안이다. 사실 제안이라기 보다는 통보에 가깝다. 이 말을 한 이후부터는 내가 뭐라건, 어른스런 목소리로 나를 “아가야” 라고 부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꽤나 엄마 흉내를 잘내어서 웃음을 참기가 힘들 정도이다. 

엄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린이가 하는 놀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늘 하던 소꿉놀이를 하는데 아가에게 줄 음식을 준비한다던가, 자동차 놀이 할때 나에겐 작은 자동차를 주며 아가는 작은 걸 가지고 놀테니 자신은 큰 걸 가지고 놀겠다거나, 항상 재워주던 인형 대신 나를 재워준다던가 하는 정도… 

나도 기왕 아기가 되었으니 울며 아기 흉내를 내며 울면 일린이가 와서 달래주고, 아기 처럼 이것저것 모르겠다고 하면 자신이 아는대로 가르쳐주곤한다. 아기가 되었기 때문에 아기 놀이 텐트에 들어가야 되고, 잠은 아기침대에서 자야 된다. 엄마가 가자는 대로 따라다녀야 하는 것도 필수. 큰 덩치인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일과시간에 일린이를 보는 것은 재택근무를 하며 잠깐 쉬러 나오는 것인데, 계속 움직여야 한다.

몸은 좀 힘들지만, 나는 이 놀이가 정말 좋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였던가, 자주 집을 나가셔서 돌아오지 않던 나의 엄마는 중학교 올라가자마자 영원히 나가셔서 십년 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들을 때까지 목소리 한 번 들을 수 없었다. 이러한 사연으로 어릴 적부터 엄마라는 말만 들으면 눈물부터 차올랐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입밖으로 엄마라는 단어를 거의 내지 않고 살아왔다. 

일린이 덕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 껏 엄마를 불러보고 아이처럼 지내니 마음 한 켠에 있던 짐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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