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미학
마산에서 태어나 7살에 서울 구로동으로 이사와서 중학교때까지 구로공단 한 가운데인 가리봉동 단칸방에 살았다. 그 뒤 형편상 가출하신 어머니를 뒤로 하고 아버지의 사정으로 이사간 곳이 부산 남부민동 산동네. 고지대 무허가 주택 지역이라 수도물이 제한급수되던 곳. 대한민국 제 1, 2 도시 중 가장 빈 촌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자라왔다. 어떤 때는 며칠이고 어머니도 아버지도 집에 들어오시지 않아 하염없이 굶은 적도 있고, 돈되는 것 없는 슬레이트 지붕집 셋방 세간에 빨간 압류 딱지가 붙은 적이 몇번인지도 모르겠다. 동네 구멍가게에 외상으로 먹거리를 먹다가 제때 갚지 않는 다며 아줌마에게 혼나거나 맞기도 다반사. 아주 어린티를 벗고나선 공병줍기, 신문 배달등으로 생존법은 익혔다. 자라는 동안 먹고 싶은 것 먹어 본 적도, 갖고 싶은 것 가져 본 적도, 배우고 싶은 것 배워본 적도 기억에 거의 없을 정도이니 "가난"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0대에 일을 시작하면서는 세후 월급 45만원을 받으며, 완전 지하 또는 반지하 방에서 꽤 오래 살기도 했다. 월세 30만원 정도를 내고나면 교통비와 식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라면 가격이 부담될 정도. 한동안 양파 구이 반찬만 먹거나 맨밥에 간장만 비벼먹으며 고추장이면 좀 더 배부르고 맛있을 것 같단 생각을 한 것도 기억난다. 구구절절한 이야기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배경으론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얼마 전 태어난 딸 아이에게 가장 물려주고 싶은 것을 뽑는다면 "가난"이라고하고 싶다. 잘사는 것을 마다하 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마는 일생을 절반정도 산 듯한 시점에서 모순적이게도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것은 그것이다. 그로 인해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기 때문이다. 가난은 진정한 “친구"를 두게 한다. 이익이 되는 사람만 사귀는 부류를 드물지 않게 본다. 그런 이들에겐 한동안의 나는 눈에 띄지 않는 존...